팥양갱 작업 일지
언니의 란제리와 대만기록(台湾紀行)
이아로
앙!녕하세요. 팥양갱의 '이아로'입니다.
추석을 잘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곧 있을 퍼블리셔스 테이블을 위해 마무리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일주일 남기고 너무 타이트한 거 아닌가요? 라고 물으신다면, 아주 타이트해서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습니다ㅡ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추석을 보내셨나요?
홀로 보낸 분도 계실 것 같고, 고향에 다녀오신 분도, 멀리 여행에 다녀온 분도 계실 텐데요. 누구와 있었든, 어디에 있었든.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충분히 취할 수 있었기를,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돌아보는 시간 보냈기를 바랄게요.
그럼, 저의 작업일지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빈손으로 행사에 나갈 수는 없다!
서울퍼블리셔스테이블을 앞두고 '이렇게 빈손으로 또 행사에 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 같았다면 행사 기간에 맞춰 낼 수 있도록 원고를 꼬박 준비해 두었겠지만, 새 원고는 이미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선보여버렸다(마음이 앞섰다). 그 이후로 'PRIDE EXPO'와 '팥양갱 백화점 팝업(우연한 선물)'에 연달아 참여했다. 감사하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행사마다 나를 보러 와주셨다. 내 책을 전부 가지고 있어서 더 이상 살 것이 없는 분들. 가벼운 근황과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진 분들. 오직 내 안부를 묻기 위해 먼 걸음 해준 분들. 대부분 그런 분들이었다.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매번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나의 무엇이든 읽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 무엇도 쓰지 않은 채로 반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이 들고 온 책을 생각한다. 모서리가 두툼하게 접혀있거나,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있거나. 책을 너무 자주 펼쳐 본 탓에 반으로 쪼개진 책도 있었다.
나의 글을 나보다 더욱 아껴주시는 분들께 앞으로 어떤 글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지금껏 써온 글과 다른 결의 글을 보여드린다 해도 내 글을 좋아해주실까?
피어나는 의심들은 사랑 받기 위해서 꼭 풀어내야할 숙제들이었다.
일상을 적어 보기로 마음 먹었다. 가볍게. 부담스럽지 않게. 내가 어디서 무얼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또, 소설을 적어 보려고 한다. 더 다양한 삶을 조명하기 위해서.
이번 작업일지의 제목은 제법 파격적인 '언니의 란제리와 대만 기록'이다. 자칫 '언니의 란제리'를 일상 글로 오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해하신다면 오해하신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모두의(0명) 기대를 뒤로 하고, '대만 기록'이 아닌 '언니의 란제리'가 이번에 준비중인 단편 소설의 제목이다.
언니의 란제리(가제)는, 갓 동거를 시작한 '너'가 언니의 란제리와 자신의 민무늬 속옷을 비교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레즈비언 커플은 만난지 하루 만에도 동거를 결심한다고 하는데. 그리하여 '아직은 완전한 타인에게 자신의 속옷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을까?' 라는 수줍은 생각에서 시작된 단편 소설이다.
챙겨 온 속옷이 벌써 동나버렸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너는 언니의 속옷과 너의 속옷이 한데에 걸려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란제리'와 '팬티'가 주는 극명함에 자신의 속옷이 몹시 부끄러웠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팬티를 갈아입게 될 줄은 몰랐던 너였기에, 속옷을 너무 자주 갈아입었다는 깨달음에서 온 당혹감이 파리한 얼굴에 투명하게 배어났다.
소설을 써보며 느낀 것은,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사용하여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고 살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적어 온 에세이와는 달리, 뼈대를 만들고 기억을 더듬어 보는 식으로 소설은 쓰여졌다(저는 소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글을 처음 쓰는 사람처럼 굴고 있다. 문장이 아주 어색하다거나, 당위성이 없다거나. 글을 쓰는 나조차도 이 인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재미있다. 처음 써보는 글이라서. 문장이 어색하고 당위성이 없어서. 나조차도 이 인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무궁무진하다.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말은, 오를 곳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소설을 통해 어떤 인물을 만나게 될까. 어떤 삶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서부터 '언니의 란제리'는 탄생했다.
'대만 기록'은, 제목 그대로 '대만'여행에 다녀와서 쓴 글이다. 하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번에 다녀온 대만 여행이 서른둘 인생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는 것이다.
첫 해외 여행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한한 응원을 받았다.
더 넓은 세계를 경험 하고 와.
좋은 거 많이 보고, 듣고, 푹 쉬고 와.
우리 팥양갱의 멤버인 '수진'이 특히나 그랬는데, 언니는 늘 그렇다. 좋은 것만 보기를, 듣기를, 맛보기를, 누리기를 응원하고 바라준다.
눈이 닿는 모든 구석이 생경하고 낯설었다. 뭐랄까,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두려움과 실패를 학습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듯 주저 없이, 용감하게 발을 내디뎠다. 이 도시에 맞서는 마음 같은 거. 몸을 내던지면 얼마든지 나를 떠안아 줄 거라는 그런 믿음이 들었다.
나는 대만에서 어떤 것을 보고 느꼈을까? 더 넓은 세계를 경험했을까?
'대만 기록'이 앞으로 더 넓게 펼쳐질 세계에 대한 출사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를 향한 응원에 대한 충실한 답변이 되기를, 온 마음으로!
발칙하고 풋풋한 레즈비언의 이야기 '언니의 란제리'와 대만 여행 에세이 '대만 기록'은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처음 공개됩니다. 나의 새로운 시도가 긴 공백을 메울 수 있기를, 새로운 이들과 닿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라며ㅡ 퍼블리셔스테이블에서 뵙기를 기약하겠습니다. 이번엔 빈손으로 돌려 보내지 않을 거예요. 꼭!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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