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양갱 산문
사과와 카레
시옷과 리을 사이
박수진
지난 레터 이후로 다음 차례가 꽤나 먼 일이라 여겼는데요. 금세 한 바퀴를 돌아 ‘벌써?’라고 반문하면서도, 어쩐지 대뜸 이번 회차 산문을 쓰겠다며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는 기온, 산책길마다 살그머니 인중을 간지럽히는 바람과 함께 낙엽이 여물어가는 내음으로 가득해요. 가을의 향이 짙어질수록 이맘때 꼭 생각나는 음식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때마침 아이폰 사진첩이 성실하게도 그 음식 사진을 턱 하니 보여주지 뭐예요.
여름내 뜨거운 주방에 서 있기 싫어 제 손으로 음식을 차려 먹는 일에 부쩍 권태를 느끼던 찰나. 나와의 식사에 다시금 정을 붙이고자 당분간 슬기로운 식생활에 몰입하려 합니다. 이 다짐에 다짐을 꾹꾹 눌러 더하며 <앙금한 마음들>을 통해 기별을 건넵니다.
겨우내 뒷베란다는 커다란 냉장고였다. 커튼 너머 그곳에는 색 바랜 갈색 자루와 나무판자로 만든 궤짝이 있었다. 보애는 저녁상을 치우고 나면 나에게 임무를 지시했다. 딸, 사과 좀 꺼내 와.
또또또. 맨날 나한테만 시켜. 툴툴거리며 베란다 유리 샷시를 열었다. 얇은 내의를 뚫고 온몸 구석구석 파고드는 냉기. 까치발로 얼음장 같은 베란다 바닥을 디디면 발가락부터 엄습하는 냉기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달그락거리는 이를 깍 물고 차디찬 사과 몇 개를 품에 안고 주방으로 냉큼 달려간다. 달그락거리며 설거지하던 보애는 물기 가득한 손으로 사과를 건네받았다. 접시와 그릇에 묻은 흔적을 제거하려 뜨거운 물로 그릇을 씻던 보애는 고무장갑을 벗고 찬물로 수도꼭지를 돌려 뽀득뽀득 사과 겉면을 닦았다. 그런 다음 쟁반 위에 잘 씻은 사과와 과도, 접시를 올려주며 또 한 번 주문했다. 깎아서 거실로 가져가. 손 조심하고.
과도를 잡는 일은 서늘하면서도 어쩐지 어른에 한발 다가서는 일이라 종종 과일을 깎을 수 있기를 기대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서툰 칼솜씨로 천천히 사과 껍질을 깎아 접시에 담는 동안 나는 보애의 설거지가 서둘러 끝내기를 바랐다. 내심 예쁘게 깎아 담은 과일을 칭찬받고 싶기도 했거니와 보애만 쏙 빼두고 우리끼리 먼저 사과에 손대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과 껍질을 음식물 봉투에 넣으며 꼼지락거리면 보애는 나를 재촉했다. 그러면 나는 쪼르르 거실로 쟁반을 들고 가 포크를 콕콕 찍어 남은 식구들을 먼저 챙기고 보애를 기다렸다.
내 고향 가까운 충주 산골에도 동막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막내 고모는 시집을 간 이후로 일평생 그곳에서 사과나무를 만지며 살았다. 비포장 산비탈을 굽이굽이 돌아 도착하면 마을 초입부터 사과나무 과수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덕분에 그 시절 우리 식구도 사과만큼은 사시사철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사과 수확철이 오면 보애는 종종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동막골에 갔다. 한 번은 고모네 식구들과 함께 먹을 새참으로 도넛을 만들었다. 나는 보애 옆에 서서 동글동글한 반죽에 깍지로 구멍을 찍었다. 뜨거운 가스레인지 앞에 선 보애는 그것들이 동동 떠오를 때까지 튀기고 뒤집기를 반복했다. 구멍 뚫린 바구니에 담아 식히고 보애와 식탁에 앉아 찬합에 차곡차곡 도넛을 담았다. 아직 한창 여름을 건너고 있을 때였다.
1인 가구 인생도 어느덧 13년 차.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나는 아직도 가끔 나와 살아가는 게 성가시다. 특히나 여름 동안 뜨거운 물과 불 앞에 서있는 일. 그래서 여름에는 채소와 과일을 챙겨 먹기 위해 어느 정도 생활을 의식해야 한다. 어떤 습관은 투쟁과 같아서 삶의 일부로 스며들기까지 부지런한 각오가 필요하다. 가령 양치질처럼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나름대로 건강한 생활과 착 붙어 살아가기 위해 일정 기간 마음을 쓰며 적응과 권태의 굴레에 빠진다.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반복이 지속적으로 나를 지탱한다 믿기도 하면서, 때가 되면 얼마간 먹을 채소와 과일을 고른다. 새로운 세입자를 맞이하기 위해 냉장고 칸칸을 비우고 닦는다. 그중에는 제때 먹지 못해 시든 것, 무른 것, 상한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정리하며 언젠가 사과와 도넛 앞에 서 있던 보애의 뒷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