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하늘이 광활합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셨나요. 이번 [앙금한 마음들]에서는 숲물결 이성혁작업일지와 출판사 결 김규열의 산문을 챙겨왔어요. 늦은 밤 평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밤 바람이 꽤 차가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여러분.
팥양갱 작업 일지
어떤 미래를 보이지 않아도 밝다
숲물결 이성혁
나만의 책을 만든 지 5년 차, 이제 다른 이의 책을 만들고 있다. 재작년 내 책에 집중하기 위해 출판사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책을 만들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거나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 저 사람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많다. 그래서 만들기로 했다. 다영은 내가 진행하던 글쓰기 모임 친구의 친구였다. 감성과 영감이 넘치는 친구라고 했다. 글쓰기 모임은 격주로 만났다. 각자 온라인으로 만나서 글을 쓰고 나눴다. 그때 다영의 글을 처음 읽었다. 쓰는 단어와 문장이 나와 달랐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 사람의 글이 모인 책을 읽고 싶었다. 당장은 낼 계획이 없다고 해서 그럼 내가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게 숲물결 1호 작가의 시작이다. (0호 작가는 나 성혁이)
다영과 온라인으로 만나 이야기하고 다영이 일하는 판교 노란 IT 회사에 가서 밥과 커피를 먹으며 책 이야기를 하고 계약을 했다. 함께하고 싶은 디자이너가 있다고 해서 함께하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다행이었다. 덕분에 멋진 표지가 나왔으니까.
국문학을 공부했지만 문학과 책 만드는 일은 거리가 있다. 모든 노동은 경험이 중요하다. 책 만들기의 경험이 없었던 나는 하나하나 해결해 가고 있다. 다른 이의 책을 만드는 일은 내 책을 만드는 일보다 몇 곱절 어렵다. 내 책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내 이야기라면 이해하겠지만 다른 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니 이야기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야 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이야기이니까.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펀딩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예산을 뛰어넘었지만 기쁘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일이다. 이 책은 시작이 되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만들고 싶다는 다짐의 시작이다. 인쇄를 마치고 전국 책방에 이 책을 모두 놓고 나면 다른 이야기를 준비해야지. 결정된 이야기는 없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과정 덕분에 앞으로의 과정을 기대한다고 말이다. 나도 알 수 없는 숲물결의 미래가 기대된다. 어떤 미래를 보이지 않아도 밝다.
숲물결 신간 이다영 에세이 『모서리가 무너지고 있어요』를 기대해주세요.
9월 24일 수요일 텀블벅 펀딩 오픈 예정이랍니다!
이성혁 인스타그램
팥양갱 산문
축하해 너의 생일을*
출판사 결
김규열
애인은 내 배꼽을 보고 참외배꼽이라고 놀린다. 내 배꼽에서 참외의 시원하고 달달한 향이 나는 것도 아닌데, 참외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배에 자그마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기분이다. 배꼽을 보고 참외를 떠올리는 일은 나를 보고 엄마를 떠올리는 일 같고. 사랑하면 닮는다는 흔한 말처럼 나란히 서 있는 엄마와 나를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닮았어. 참외 씨를 심은 곳에서 참외가 나듯 참외배꼽을 가진 사람이 참외배꼽을 가진 사람을 낳았다. 기능을 상실한 배꼽은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 샤워를 하다 배꼽에 손가락을 밀어넣으면 기억나지 않는 시간들이 떠오를 것만 같고. 물줄기를 얼굴로 받아내며 미끈한 물살을 가르던 연약한 시절을 떠올린다.
참외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래. 어제는 참외를 씻다가 애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헷갈리는 일이 많아서 자꾸 헤매게 되는 걸까. 고개를 돌리니 조명이 꺼지고. 작은 케이크 위로 꽂힌 초 하나를 앞에 두고 두 눈을 가지런히 감는다. 얼마간 숨을 참는다.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랑하는 몇몇의 얼굴을 떠올린다. 불가능에 가까운 소원을 빌어본다. 나의 숨에 주변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나 태어난 게 실수는 아닐까…… 이런 질문을 삼키고 있었는데.
축하해 너의 생일을.
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지. 평생 축하하거나 축하 받는 일 중 하나만 골라 보라는 너의 말에 나는 너를 평생 축하해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 침대 위로 드러누운 우리 사이에 작은 사람 하나가 함께일 것 같고. 참외배꼽이 아니어도 우리를 보고 닮았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기겠지.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계속 살아가고 싶어. 축하해. 오래도록 그런 말을 속삭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