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세탁 냄새
배가 불러올수록 뒤척이는 밤이 늘어가는데 도리어 이른 아침에 눈을 뜨는 날들이 많아졌다. 더 잘 수도 있었지만 끊어진 잠을 이어붙이는 데 단잠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이불 밖을 나섰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날에는 일상에 작은 변주를 주고 싶어하는데 대단한 일들은 아니다. 대체로 따듯한 차를 한 잔 우려 마신다거나 바닥 걸레질을 하는 정도다. 내 몫으로 놓인 하루가 조금 길어진 만큼 내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일도 한 두 개 정도는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아침잠을 가볍게 털어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늘의 변주는 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향하는 일이었다. 날이 맑으면 거실 창에서 남편의 직장과 나의 사무실을 손으로 짚어볼 수 있을 만큼 가깝기 때문에 보통은 남편의 차를 타고 함께 출근을 하지만 오늘은 가만히 혼자 걷고 싶은 아침이었다. 지난밤에는 봄비가 내려 서늘했는데 아침에는 작은 그늘을 빠져나오자 따스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 제 몸만 한 책가방을 매고 덜컹거리며 걷는 아이들, 건너편에서 손을 흔드는 헝클어진 머리의 젊은 엄마들, 빗자루로 떨어진 꽃잎을 쓸고 있는 경비 아저씨, 땅에 코를 묻은 채 느린 걸음을 떼는 개들……. 차 창가 너머로만 바라보던 풍경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낯선 기분이 들었다. 우습게도 어딘가에 속한 기분마저 들었다.
운전을 하기 시작한 후로 버스 도착 예정 시간 어플을 지운지 오래였다. 막연하게 곧 오겠지 싶었던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해서도 10여 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조바심은 나지 않았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나의 출근. 나에게는 이미 이른 아침을 깨우며 확보한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음악 없이 걷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며 쓰기로 했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사무실 건물 안 주차장으로 직행하며 생략되었을 나의 걸음과 기다림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을 아끼는 동안 허비된 것들은 과연 없었을까. 하릴 없는 생각을 하다 버스에 올랐다.
창 너머로 내려앉은 봄볕이 몸을 덥혔다. 나른한 기운에 가만히 눈을 감고 창가에 기대어 짧은 간격으로 들려오는 정류소 안내음을 흘려 듣는 사이에 오래된 어느 오후의 기억이 찾아왔다. 평화롭지만은 않았던 나의 유년 가운데 가장 고요하고 평안했던 시간, 그날의 볕과 숨과 세탁 냄새가 코끝에서 살랑거리는 것 같았다.
나의 최초의 기억이 시작되었던 17평 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주말 낮으면 소파도 거실도 없이 안방에 모여 앉아서 TV를 보고 과일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주중에는 학교와 학원을 다니기 바빴던 어린 우리와 주 6일 출근을 하던 젊은 엄마 아빠에게 그 시간은 밀린 사랑과 보살핌을 나누는 작은 짬이기도 했지만, 미처 손대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는 틈이기도 했다. 함께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주말 연속극을 보며 웃고 우는 날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각자의 구역을 지키며 흘러가는 날도 있었다. 나는 작은 방 안에서 살을 부비며 하나의 일을 함께하는 시간도 좋아했지만, 부지런히 무언가 하고 있는 엄마 아빠의 등을 바라보는 일을 가장 좋아했다.
빛바랜 투명한 고무 슬리퍼를 대충 꿰어 신고 세탁기에 네 식구의 빨래를 털어 넣는 엄마. 밑이 닳은 슬리퍼가 하얀 베란다 타일을 긁을 때마다 들려오던 소리 (나는 두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작은 조약돌들이 부딪히는 상상을 하곤 했다),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가 힘겹다는 듯 무겁게 돌아가는 소리와 얇은 플라스틱 배수관을 타고 세탁수가 내려오는 소리…. 나름의 순서를 지키며 들려오는 생활음을 들으며 까무룩 낮잠에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팔을 베개 삼아 잠든 내 머리를 살짝 들어 낮은 베개를 놓아주었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어렴풋이 느껴지는 엄마의 희멀건한 얼굴과 작게 새어나오던 깊은 숨 냄새…. 그 순간은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평안함이 아닐까.
숙제가 없는 주말 낮. 엄마도 아빠도 모두 집에 있는 환한 낮. 베란다 쪽에 머리맡을 두고 누워 세탁수 소리를 시냇물 소리 삼아 드는 짧은 잠. 딩동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섬유유연제 냄새. 똑깍똑깍, 멀지 않은 곳에서 아빠가 화분 가지치기를 하는 소리......
그 순간이 영원히 내 주말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짧게, 한 편의 장면처럼 남을 줄은 몰랐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영원한 유년을 꿈꿀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따스한 봄볕이 얼굴을 간지럽힐 때면 그 오후가 떠오른다. 한 뼘의 거리를 두고 내려앉던 엄마의 숨 냄새, 오래된 베란다에서 잠시 머물던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 씩씩함이 남아 있던 앳된 얼굴의 서른 중후반의 엄마와 아빠. 좁고 오래된 집에서 어린 내가 느꼈던 것은 답답함이 아니었다. 깊이 어딘가 푹 잠겨 속해 있다는 감각, 안전함이었다. 이후로 크고 작은 진통이 우리의 작은 집을 쥐고 흔들기도 했지만 집이라는 공간, 가족이라는 존재를 결과론적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꺾이는 순간들이 있어야 시절이라는 마디가 생기는 것일 테니까.
5분 남짓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구석구석 도는 동안 잠시 낮잠에 든 기분이었다. 누군가 대신해 눌러준 하차벨에 정신을 차렸다. 나는 아직도 도착하지 못했구나. 여전히 진행 중인 나의 아침의 변주와 이 시절의 마디가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