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종길
요리조리 오종길아 디엠지 피스트레인 알어?
어느 날 친구 민섭이 카톡을 보내왔다. 그의 말 한마디에 철원행이 결정되었고, 유월 중순 주말 동안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 다녀올 수 있었다.
후암동삼층집으로 알려진 민섭은 용산에서 마다밀을 운영 중이다. 제철 음식을 선보이는 그의 식당은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맛집인데, 이번 페스티벌에서 푸드 부스를 꾸리게 된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조리 경력이 있는 내게 함께함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적잖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칼을 내려놓은 지 오래, 펜을 들고 있는 것이 훨씬 익숙하기에 괜한 민폐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응한 이유는 왠지 그와 함께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이 들어서이다. 또한 나는 예년과 달리 아주 바쁘지 않은 초여름을 보내게 될 것인데, 막상 휴가철에는 많이 바쁠 예정이라 이참에 여름휴가를 겸해 인생 첫 뮤직 페스티벌을 경험하고 싶기도 했다.
동네 주민이기도 한 민섭과 페스티벌을 앞두고 그의 집에서 만났다. 3일 치, 몇백 인분의 음식을 만들려면 밑 준비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사실을 잘 알기에 재료 손질을 도왔는데 예상 소요 시간의 두 배를 쓰고 나니 녹초가 되어버렸다. 잠깐 집에 들렀다가 사무실에 가야지…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릴 정도였으니. 어쨌거나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철원으로 향했다. 민섭을 비롯한 선발대는 전날에 와 이미 하루 영업을 한 상태였다. 초면인 이들 사이에서 데면데면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업무에 투입.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우리는 이미 절친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그것을 전우애라 이르기도 할 터.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낯선 공간에서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행인 것은 민섭이 꾸린 팀원 하나하나가 제 몫을 톡톡히 해내었다는 사실. 든든한 전우들 덕에 잠깐이나마 페스티벌 현장에 섞여 몸을 흔들고 음악을 듣고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토요일 영업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새벽이었는데 늦게라도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편의점에서 사 온 주전부리를 거실 가운데에 펼쳤다. 소란한 시간 뒤에 찾아오는 이상한 적막.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는 부유물을 기다리듯, 숙소 앞 벤치에 앉아 잠깐 숨을 고르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민섭도 바깥으로 나왔다. 그에게도 어쩌면 나와 같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가 앉았던 자리를 그에게 양보하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기진맥진한 채로 잠들었다가 이른 아침 부스스한 얼굴로 목욕탕에 들렀다. 몸을 씻고 노천탕에 나란히 앉아 산새를 내다보며 무슨 대화를 나누었더라. 안전한 기분이 들어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은 한결 수월했다. 다들 하루 사이 업무에 적응한 것이다. 어제보다 넉넉해진 마음으로 페스티벌을 즐기고, 마다밀 부스에서 준비한 재료를 모두 소진하니 마침 페스티벌도 막을 내릴 때가 되어가고 있었다. 3일간 영업한 부스를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하던 차에 멀리서 함성이 들려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눈빛들.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인순이의 무대를 우리도 즐길 수 있겠다는 설렘. 트렁크에 마지막 짐을 싣고 무대까지 함께 걸었다. 무대 왼편 대형 스크린 앞에 자리를 잡고 보니 소리쳐 ‘친구여’를 따라 부르는 이들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어떤 친구를 떠올릴지, 어떤 시절이 스쳐 지나갔을지 알 수 없지만, 까만 운동장에서 둥글게 어깨를 맞잡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서로가 오래 들여다보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이내 공연의 마지막 곡이 끝났지만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들 앞으로 인순이는 다시 걸어 나왔다. 이어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고, 땀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카메라가 오래 비추었다. 조용한 인파 속으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흘러가는 내내 눈시울이 가득 차오르는 화면 속 얼굴 너머로 희망과 사랑을 굳건히 하는 모두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거위의 꿈>이 흘러나왔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앞에 /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리에게도 그런 꿈이 있다. 어린 내게도 있었고, 어제의 내게도, 오늘의 내게도. 우리는 얼마나 그 꿈을 잊고 살아가는지. 아주 멀어지진 않았는지.
모든 공연이 끝나고 고석정을 빠져나오면서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함께 어깨를 맞잡고 소리치던 우리가,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조용히 어루만져주던 우리가, 우리가.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렇게 조용하게 완전하게 한 걸음씩 함께 걷다 보면 밤이 새도록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길이 끝나도 길을 내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깊은 밤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를 달리며 사색에 잠겼다가 하나둘씩 입을 열어 대화를 나누었다. 일에 몰두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응원하고, 진심을 전하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조수석에 앉은 이는 잠깐 조느라 고개를 까딱. 옅은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이렇게 힘든데도 즐겁다는 사실이 웃겨서 피식피식 웃었다.
페스티벌 현장에서 그랬듯, 노동과 휴식을 겸하는 일은 내게 익숙하다. 정해진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의 삶에서, 일인 출판사 대표로 넘어온 지금까지 10년 가까운 세월을 그렇게 보냈기 때문이다. 또한 주방의 분주함 역시 내게 낯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에 나는 동료들의 빚을 지고 있다. 무엇 하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을 일들이 분명하다. 노동에도, 쉼에도 마찬가지인 사실이다.
곁의 이들과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페스티벌에서는 얼굴에 반짝이를 잔뜩 바르고 다녀도, 나시티만 입고 있어도, 대낮에 막걸리랑 맥주를 마시다가 잔디밭에 누워 잠깐 눈을 감고 있어도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괜찮은 기분이었다.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텐데 어째서인지 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내 삶에 아직도 그런 게 많구나. 열어야 할 문이, 넘어야 할 산이, 뚫어야 할 벽이 여전하다는 사실은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가끔 동료들을 만나 큰 힘을 얻는다. 그런 연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가능한 것이자 내일의 우리를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 수 있을 곳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으니 앞으로도 계속 갈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은 내게 다행인 사실인지도 모른다.
대장 민섭을 살피며 나는 대표란 직함의 무게를 절절히 느꼈다. 내가 짊어진 것들의 무게가 형상으로 빚어져 어깨 위에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와 나의 일은 상당 부분 다르지만, 우리는 각자가 가진 꿈을 펼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표가 되어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은 닮아있다. 그의 내일은 어떤 모양일까. 나의 다음 달은, 당신의 겨울은, 우리들의 내년은 어디까지 닿아있을지 알 수 없으나 그렇기에 흥미진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 같이 걸어가 보자고,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일단 걸어보자고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