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양갱 산문
주제 이아로
안녕하세요, 아로입니다. 저는 종길 작가님에 이어 세 번째로 ‘팥양갱 산문’을 적게 되었어요. 글을 안 쓴 지가 벌써 삼 개월이 넘어가는 중이라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지… 글을 쓰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는데요, 그 ‘쓸 수 없는 마음’을 적어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름’ 하면 많은 이들이 초록의 아름다움을 말해요. ‘낭만’이나 ‘청춘’, ‘영원’ 같은 널뛰는 생명력을 가진 단어들이 유독 많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여름이 비수기인 사람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려 해요. ‘여름 싫어단’을 대표하여 끈적거림, 꿉꿉함, 무더위와 지친 마음 같은 걸 이야기해 볼게요.
여름은 다 지나버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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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브러트린 집안일을 구석으로 전부 밀어둔 채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서울국제도서전’ 이후로 처음 갖는 휴식. 여름의 초입부터 끝 무렵까지, 흐르는 시간에 조바심을 느끼며 부족한 잠을 더욱 줄이고 빠듯한 매일을 살아냈다. 앞으로는 무얼 써야 할까, 쓸 수 있을까. 반쯤 내려둔 블라인드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며 얕은 고민에 빠졌다. 기차가 방향을 틀 때마다 단단히 고정되지 않은 일부의 마음들이 텅 텅 몸 안을 굴렀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에어컨 바람 탓에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방에 챙겨 온 셔츠를 꺼내어 입기 위해 조용히 몸짓하다가 곤히 눈을 감은 옆자리 승객의 얼굴을 살폈다. 행여나 잠든 그를 깨우게 되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였다. 셔츠 깃을 세워 목덜미를 감춘 후 의자에 몸을 뉘어 앉아 눈을 감았다. 조금 전에 살폈던 그의 얼굴은 금세 잊혔다.
나에게 여름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계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계절. 그리하여 잠시 멈추는 계절. 손수건이 없으면 외출을 할 수 없을 만큼 땀이 많아서 늘 흥건히 젖은 채로 여름을 보내왔다. 언젠가 손수건을 놓고 외출했던 날, 비좁은 마을버스에서 차마 닦아내지 못한 땀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 티셔츠를 다 적셨던 적이 있다. 목덜미와 등, 가슴팍, 오목한 배꼽까지도. 그 끈적거리는 감각이 나에게는 꼭 여름의 상징과 같아서 여름이 너무나 지겹다. 게다가, 햇볕을 오래 쬐면 꼭 두통이 오르는 바람에 몸살에도 잘 시달리는 편이라서, 식욕도, 성욕도, 수면욕도 모두 미미해진다. 몇 년 전에 적었던, ‘여름은, 모든 것이 뜨겁게 살아 움직이는 계절’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지독한 여름을 앓고도 이만큼 희망적인 문장을 썼다는 것이 지금의 나로서는 믿기 어렵다. 그 ‘모든 것’에 자신은 포함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여느 여름에도 뜨겁게 살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굴고 있다.
노력을 냉소하는 일에 익숙하다. 이건 너무나 사랑받고 싶어서 생긴 버릇 같은 것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받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떠난 사람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더는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 가끔은 이 실망감이 내게 도움이 되는 감정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냥 냉소해 버리는 것이 더욱 쉽고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고, 어쩌면 너무 믿어버린다. 앞으로는 무얼 써야 할까, 쓸 수 있을까. 어떤 글을 쓰는 나여야만 그들을 곁에 붙잡아둘 수 있을까. 이전의 글들과 지금 나의 글들이 너무나도 달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글을 지금의 나로서는 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든다.
사실, 이전의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외부의 자극에 집중하기보다는 발화하는 것들에 더욱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겪었어요’, ‘아팠어요’나 ‘슬펐어요’ 같은 감정적인 호소보다는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나와 같은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유가 되어주고 싶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당신은 왜 그렇게 아픈가요? 슬픈가요? 고통스러운가요? 슬픔을 더욱 능숙하게 해내고 싶다는 생각과 그에 대한 집념이, 자신을 슬픔과 분리해 냈다고 나는 느꼈다.
그런데 이 말이, 꼭 당신들과 내가 분리되었다는 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나는 있는 힘껏 말하고 싶다. 당신은 슬픔이 아니라고. 슬픔이 될 수 없다고. 슬픔을 벗어나 이 곁으로 와도 좋다고.
한 번 사랑 받았던 감각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이 찌는듯한 더위가 모두 꺾이고 나면 그제서야 그리워하게 될까? 이 두려움과 불안을, 조바심을, 간절함을. 아무리 닦아내도 끈적하게 남는 땀처럼 닦아 내려야 닦이지 않는 이 마음들을. 살아있다는 감각보다는 버팀의 감각이 선명해져 온다. 마음이 텅, 텅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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