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새벽
김규열
학교와 학원. 단순하지만 결코 순탄치 않은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본체가 웅장한 소리를 내면 이윽고 스피커를 통해 네이트온 접속 음악이 흘러나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대화를 걸어오는 친구들. 하루에 절반 이상을 함께 보냈으면서 뭐 그리 할 말이 많은 지 대화를 건 순서대로 모니터 화면은 자그마한 창으로 채워졌다. 한 뼘 크기의 창에서 우리는 마음껏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의 비밀을 스스럼없이 부쳤다. 이름과 이름 옆으로 설정해둔 발칙한 대화명이 끊임없이 좌우로 교차되며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조금 서툰 방식으로 표현했다. 다정하지 않을수록, 모질수록 친하다고 여긴 시절. 그땐 그게 우리의 방식이었고, 최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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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도 아닌데 너와 매일같이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서로를 하루 종일 기다린 사람처럼 접속했다는 알림이 사라지기도 전에 "ㅎ2" "ㅎㅇ" 같은 간편한 방식으로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대화의 대부분은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학교에서 벌어진 일화가 전부였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모니터 오른쪽 하단은 00:00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지런하게 놓인 그 숫자는 삶이 초기화된 기분을 들게 했다. 내일이 주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이 새벽이 끝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냥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고……
이 새벽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너는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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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달리 그날 너는 네이트온에 접속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대화창이 아니어도 나는 네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너는 언제나 내게 알려주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간간이 걸려온 전화에서 너의 동선과 행적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통화였을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차가 달리는 요란한 소리. 그 소리와 겹쳐 들리는 죽고 싶다는 말. 선명하게 들렸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몇 번이나 뭐라고? 되물었다. 곧이어 네가 도로로 뛰어들고 싶다는 말을 덧붙일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쳤냐는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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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의 시간이 지나 오늘이 어제로 슬며시 모양을 바꿀 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흐느끼는 소리가 왕왕 울리고 훌쩍이는 소리가 너의 음성을 집어 삼켜도 나는 네가 어디에 있는지, 그곳이 어느 아파트이며, 몇 층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과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는 너의 진심을 멍청하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천천히 숫자를 세다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통화에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안일하게 생각한 머리와 달리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간신히 네가 말한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래를 확인해주기를 부탁했다. 다시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떨리는 몸을 붙잡기 위해서인지, 기도하기 위해서인지 처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차오르는 죄책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다시 건 전화. 수화기 너머 들리는 낯선 음성. 왁자지껄한 소리. 그때부터 일정 부분 기억이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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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면 봄날에도 하얀 입김이 흩어질 것 같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나를 아프게 한다. 꽃잎 떨어지는 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도 여전히 어떤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 뒷모습을 떠올리면 매 순간이 새벽이다. 칠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