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나요?
몇 년째 느슨하게 이어 온 독서 모임에 오랜만에 참석했다. 지하철 역에서 모임 장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소라의 ‘봄’을 들으며 주말 오전의 볕을 만끽했다. 찬바람이 불었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챙겨온 목도리를 가방에서 꺼내어 가볍게 둘러맸다. 날이 조금 풀리는 듯하더니 주말이 되자 기온이 다시 떨어졌다. 해방촌 어딘가에는 벌써 개나리가 피었는데. 나뭇가지에 맺힌 목련의 봉우리는 꽤나 단단하게 보였다.
모임 장소는 번화된 곳에 있는 스타벅스의 한 지점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매장 안은 한산했다. 오늘의 커피 숏사이즈를 주문한 후 픽업대 근처의 자리에 앉아 줄이어폰을 돌돌 감아 정리했다. 안쪽 단체석에는 모임원들이 이미 와 앉아 있을 테였다. 나도 늘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는 편이지만, 그들은 나보다 더 부지런했다. 주문한 커피는 금방 나왔다. 직원분께 가볍게 목례하고 양손으로 커피를 감싸 쥔 채 모임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잘 지냈어요.”
목도리를 풀어 가방과 함께 의자에 걸어두며 모임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가져온 책을 꺼내었다. <폭풍의 언덕>, <싯다르타>, <그저 하루치의 낙담>, <눈과 돌멩이>, <뒷모습>…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책을 눈으로 가볍게 훑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져온 책이 가장 얇은 듯 보였다.
“아로님, 센티멘탈 밸류 보셨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직 못 봤어요. 하고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창헌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영주 씨. 센티맨탈 밸류 보셨어요? 와. 진짜” 입을 틀어막으며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맞장구쳐 보였다.
“그럼 햄넷도 보셨어요?”
“그거 볼지 고민했는데 아직 안 봤어요. 보셨어요?”
“저 그거 보고 울었잖아요. 인생 영화예요 진짜”
“그정도예요? 시라트보다 좋아요?”
마음을 요동하게 하는 대사가 있었다거나, 어느 장면을 보고는 심장이 뛰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다들 영화를 많이 보고 사는구나.
그들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조금 뒤로 빠져있었다.
심장이 뛰었다니. 그런 걸 경험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보고 감동 받는 거. 내 안에서부터 발화하는 감정으로 인해 코끝이 찡해지는 거. 얼어있던 가슴이 녹아내리는 거. 이제야 비로소 숨을 쉬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일, 그런 거.
나도 심장이 뛰는 경험을 다시 해볼 수 있을까? 초롱하게 눈을 빛내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이들의 취향을 잠시 빌려보기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바로 영화를 예매했다. 평일 늦은 점심. 정시에 시작되는 영화라서 지도 어플을 통해 상영관의 위치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혹시라도 길을 헤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부럽다고 생각 했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그 이유를 들 때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심장이 뛸 만큼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전부 부러웠다.
정리해 둔 이어폰을 도로 풀어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플레이 리스트의 이름은 ‘이소라’였다. 그래, 나는 이소라의 음악을 꽤 오랫동안 좋아해 왔지. 이소라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건…….
플레이리스트를 죽 내려 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이소라의 곡을 왜 좋아하냐면,
이소라의 가사를 왜 좋아하냐면,
이소라의 목소리를 왜 좋아하냐면,
이소라의 슬픔을 왜 사랑하냐면,
이소라의 고독을 왜… 하냐면.
빈 이유를 채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일담
저는 머지않아 <센티멘탈 밸류>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모임원들을 부러워했던 것이 조금 민망해질 만큼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삶의 샘이 메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다 말라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고여있었던 것 뿐이었나봅니다. 영화 <센티멘탈 밸류>의 어디가 좋았는지 묻는다면, “그러게요, 영화 한 번 더 보려고요. 제가 느낀 감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더욱더 분명하게 좋아하기 위한 마음입니다.
영화 포스터는 방 안,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습니다. 오랜만에 느낌 감정의 동요를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함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나요?
그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고여버린 마음의 길을 틔워낼 시간을 잠자코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