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생각을 적어내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낸다고 하여 삶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펴내고 5년이 흐르는 사이 몇 종의 책을 더 출간하게 되었지만 책이 쌓여갈수록 나는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것은 나를 태워서라도 물성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과욕의 결과였다.
근래에 들어서는 내 인생이 몇 페이지의 글로 축약되는 기분도 들었다. 내가 적어낸 것들로부터 잠식되어 가는 시기에 개정판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 또한 관성에 의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오탈자나 비문을 잡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시절을 읽는 일은 글이 아닌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예전의 다짐을 세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틀림없이 내가 한 경험이고 내가 쓴 문장인데 생경하게 느껴졌다. 어떤 글을 읽을 땐 과거의 내가 부럽기도 했다. 저 땐 정말이지 순수하게 기록을 즐기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써 글을 활용했구나 싶었다.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글을 위해 경험을 사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기에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웠다.
글이란 것이 계속 쓰고 연마할수록, 문장을 구사하는 기술적인 면에서 나아지는 것이라면 그 부분에서는 예전보다 나아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있는가 하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개정판을 편집하며 몇 편의 글은 덜어내고 세 편의 여행기를 더 싣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세 편 모두에서 나는 어딘가로 올라간다. 드래곤스 백, 선돌, 모래 언덕 그리고 상산봉. 그러나 그 오름의 행위에는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적이 없었다. 외려 ‘돌아봄’, ‘아래를 바라봄’, ‘다시 내려옴’에 관한 마음이 주로 담겨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위로 올라가려고만 했다. 눈앞의 것에 혈안이 되어 앞으로 가려고만 했다. 때문에 옆을 둘러보지 못하고, 아래에 시선을 두지 못하고, 다시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일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던 것처럼, 이 책을 다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책의 내용을 개정하겠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바로잡기 위함이 크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당신 마음이 자주 멈칫했기를 바란다. 잔잔한 호숫가에 몸을 맡기듯 이야기에 머무는 동안, 잠시간 발질을 멈추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비록 갈 데가 없어도 괜찮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만이 샛길로 빠질 수 있는 법이므로.
또 다른 샛길로 들어서며 이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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