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김규열
세 권의 책을 동시에 만들고 있다. 3월과 4월과 6월 출간을 목표로 한 산문집과 산문집과 앤솔로지. 한 권은 추천의 글 마감을 기다리는 중이고, 또 다른 한 권은 추천의 글과 표지 그림 마감을 기다리고 있으며, 마지막 한 권은 작가님들과 교정지를 나누고 있다. 1월에 출간된 추성은 시인의 산문집 『이전과 다르지 않다, 아마 미래도』를 포함하면 결에서는 상반기 동안 총 네 권의 책을 세상에 선보인다. 이후 하반기 출간 예정인 책들이 큰 변동 없이 출간된다면 2026년에만 여덟 권을 출간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2026년만을 기다렸다. 2026년은 결에게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 동안 서른이 되었고 “뭣도 없는데 자존심만 더럽게 쎈” 같은 문장이 나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를 운영한다고 나를 소개하면서도 출판사가 생업일 수 없는 비애. 그런 사실이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진 않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출판업의 현실과 그 현실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그게 돈이 되냐 질문하는 사람들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설 연휴 동안 고향인 대구에 내려갔고. 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났으며. 장남이자 장손인 나에게 쏟아지는 결혼이나 생계에 관한 질문들. 결국에는 돈과 관련된 이야기들. 나는 여전히 현실을 모르고 이상만 좇는 아이. 그런 인식 앞에서 나는 속으로 어쩌라고...... 했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로부터 온전한 지지나 응원은 평생 받을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원하고 해내고 싶은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여도 도무지 나를 헤아려주지 않는 사람들.
그런 아빠가 소개해 주신 한 대표님을 만나 뵀다. 그 대표님은 출판사를 운영하시지도 않을뿐더러, 당연히 출판계에 대한 이해도도 없으셨고,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슬쩍 듣고는 출판사를 하겠다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결혼 해야지, 돈 벌어야지 같은 말을 초면에 해댔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판으로 돈 버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걸 누가 모르나?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강사들이 많다며, 강사들을 위한 글쓰기-출판 강의를 하고 그것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한 달에 최소 열 권 이상의 책을 출간해야 한다고. 베스트셀러를 몇 권씩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 시간가량 이어진 일방적인 대화에 나는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길 반복하며 그렇군요, 맞습니다, 와 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자리가 끝난 후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물어보는 아빠에게 소개해 주신 대표님은 나랑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 같다고 짧게 답했다. 아빠는 그런 내게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그러니까 아빠는 정말 내가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출판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각오했다. 망할 각오. 가난할 각오. 책임질 각오. 그러나 망할 생각이나 가난할 생각은 한 적 없고 책임질 생각만 했다. 나의 삶을. 출판사 결을. 결을 믿어주신 작가님을. 작가님의 원고를. 결과 함께하는 모든 작업자를.
내가 출판사를 위해 선택한 세상과의 타협은 주 3일 SPA 브랜드의 노동자 되기. 출판 강연을 할 적에 나의 모든 것을 성실히 내어놓기. 어쩌면 이건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고, 진짜 잘하고 싶다.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에는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너는 평생 아무도 보지 않을 시를 쓸 거야. 홀로 그냥 쓰다가 사라질 거야.
너는 남의 글만 읽다가 지워질 거야. 흔적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그래도 괜찮니.
응.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 「검은 닭」 부분,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난다.
나는 명재 형을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랑을 배웠고, 자본주의사회의 중심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시를 쓰거나 책을 만드는─을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배웠다. 그것은 누군가를 앉혀 두고 타이르거나 가르치는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눈빛이나 삶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어제는 유튜브 머니그라피 Moneygraphy 채널의 <방문 교사와 불량배 셋의 제법 진지한 독서 클럽 | B주류초대석 박혜진 편집자> 편을 보았다. 당신이 창작,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예술을 하고 있다면 꼭 해당 영상을 시청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위로를 당신도 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얻은 용기를 당신도 얻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뭣도 없고 자존심만 더럽게 쎈 사람으로 살겠지. 그렇지만 어쩌겠나.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