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같은 운명을 믿으며 나아가기
─ [여백과 결] 첫 번째 도서
『이것은 꿈인 동시에 생시』표지 작업기
출판사 결 김규열
나는 지독한 운명론자다. 어쩌면 팥양갱이라는 집단에 속하게 된 것도, 여러분께 이 글을 보내기 위해 쓰고 있는 지금도, 이 모든 것이 ‘운명’ 아닐까?
출판사 결은 작가뿐만 아니라 책을 만드는 데 있어 협력 가능한 여러 신진 작업자에 관심이 많다. 이번 신간 『이것은 꿈인 동시에 생시』에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디자인 작업을 이어온 김하래 님이 표지 그림을 맡아주셨고, 그러나 그녀에게 책 표지 작업은 처음이기도 했다. 책이라는 물성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수많은 종류의 종이와 마주하고, 종이에 따라 달라지는 발색을 고려하며, 코팅을 비롯한 여러 가공 이후의 결과물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상상과 완벽히 동일한 결과물을 손에 쥐기에 난도가 꽤 높은 작업일뿐더러 혹여나 인쇄사고가 발생하는 날에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러니까 책 한 권을 만드는 과정은 최상의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 부단히 고민하고, 과감히 저지르고, 기꺼이 마음 졸이는 일이다.
이러한 경험이 전무후무한 그녀와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은 내겐 하나의 모험임과 동시에 설레는 일이었다. 불안한 마음 따위 들지 않았다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프로패셔널한 업무처리 방식과 더불어 우리의 우연 같은 운명이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떠한 분들이 결을 팔로우하고 있는지, 결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스토리 시청자를 살피는 편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종종 계정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그중 ‘gimharae’라는 본인의 이름으로 유추되는 정갈한 아이디의 계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의 수준으로는 결코 구현할 수 없는 작업물들이 차르르 펼쳐졌고. 아름답다. 언젠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 나는 출판사 결 계정에서 개인 계정으로 전환한 뒤 팔로우를 하였다. 오래 그 계정을 눈 여겨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며칠 뒤 그 계정으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전주책쾌에서 결 책과 굿즈를 구매하였다고. 연락이 늦었지만, 굿즈를 배송 받을 연락처와 주소를 보낸다고. 나 당신과 작업하는 날을 홀로 그려보았는데. 우리는 이미 전주에서 만난 사이였구나. 마치 우연 같은 운명처럼.
시간은 흘러 2025년 3월. 새롭게 준비하는 시리즈 [여백과 결] 표지 그림을 도맡아줄 디자이너를 생각하다 하래 님이 떠올랐다. 얼굴도 모르는, 내겐 이름이 전부인 그녀를. (그땐 그녀인지 그인지 성별조차 알지 못했다.) 무작정 메시지를 보냈다. 만나자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그렇게 해방촌에서 만난 그녀는 출판사 결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품고 있었다고 했다. 전주에서 만나 서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작업을 이어오고 있던 우리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은 운명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지 않나. 대화는 물 흐르듯 흘렀고 우리는 [여백과 결]이라는 한 배를 타게 되었다.
이후 표지 그림에 관하여 몇 번의 대면 회의와 영상 회의, 통화와 메시지를 수시로 나누며 소통했다. 단순히 래퍼런스를 주고받고, 결이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강우근, 여세실, 조온윤, 차유오, 차현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다섯 명의 시인의 산문을 표지 그림에 조화롭게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원고를 완독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가진 채 작업을 이어간 하래 님의 공이 크다. 그렇게 하래 님과 『이것은 꿈인 동시에 생시』 를 완성하기까지 5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남들은 신경 쓰지 않을 사소한 부분에도 머리를 맞댄 귀중한 시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발맞추어 걸어가는 이 과정을 나는 사랑한다. 멀끔하게 완성된 책의 그늘에는 이런 노고의 과정이 있다고. 사실 노고라고 말하기 민망할 만큼 즐거웠지. 이제 한 발짝 내딛은 [여백과 결]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언제나 바라왔듯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깨고 싶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 당신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