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코 이치고이치에(もじこう いちごいちえ)
엿새 일정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기타큐슈현의 작은 마을 모지코. 한산한 시골 골목에 위치한 사쿠라의 집에 신세를 졌는데,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우리의 대화는 끊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매일 밤 코타츠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인 얘기를 나누다가 새벽 늦게까지, 가끔은 해가 뜰 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쉽게 잠들지 못할 정도였다.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찾은 건 출판사 시절에서 기획한 도서에서 시작했다. 스몰토크에 관한 이야기를 엮고자 사람들의 스몰토크를 수집하는 중인데, 공동 기획자 하가람의 제안으로 일본과 동시 진행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하여 여행 중 하루는 시절의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있는 후쿠오카의 공간 몇 곳을 방문했고, 그날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을 모지코에서 보낸 것이다. 하루는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마주한 윤슬에 감탄하며 일본어에는 윤슬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가 우리에겐 없는 것처럼 한국과 일본 사이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 듯도 했다. 하지만 한국어와 나란한 단어가 없음에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는데, 그건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마음과 닮아있었다. 이어 그들이 내게 알려준 단어는 이치고이치에(いちごいちえ)로, 일생에 한 번뿐인 인연∙만남이란 뜻의 일본어였다.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없는 단어다. 내겐 있으나 네겐 없는 것. 너에게는 충분한데 나한테는 부족한 것. 우리는 그런 것들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음을 여는 일 말이다. 서로를 향해 열린 사람들. 세상을 향해 열린 자세로 임하는 이들. 그건 시를 쓰고 책을 만들고 친구가 되고 사랑을 이루는 일이기도 하니까.
모지코에서 지내며 여러 일본인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냈다. 최근 약혼을 한 부부의 집에 초대받아 나베를 나눠 먹으며 디제잉과 출판에 대해, 꿈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 밤이 있고, 이별을 겪은 이와 슬픔을 나누기도 했다. 눈물을 훔치다가도 기뻐하였으며 직접 담근 우메보시를 맛보고 아끼는 맛집과 일터와 동네 주민을 소개해 주는 시간도 가득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해와 공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까. 내가 이해한 것과 그들이 이해한 것의 차이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거리만큼 가깝지만 먼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나베나 한 솥에 지은 밥을 나눠 먹었듯, 동전을 모아 열차표를 끊어주고 서로의 언어를 발음해 보는 마음처럼 모든 시간에 온기가 가득 스며있었음은 분명하다. 낯선 단어의 발음을 기억해 두었다가 조금씩 틀리게 말하거나 그들의 언어에는 없는 단어와 문화에 다가가려 애쓰는 일. 이해와 오해를 나누기보다는 인정하고 내어주고 기대면서 조용하게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껏 들뜬 기타큐슈의 번화가를 걸은 날도 있다. 겨울맞이 장갑을 사기로 한 친구는 백화점에 들어가 내게 자동차 모형을 선물로 사주었다. 언젠가 차를 산다면 갖고 싶다 말한 모델의 미니어처였다.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 삼아 덥석 받고선 모지코로 돌아와 상자를 뜯어보니 자동차 모형은 티슈함으로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생각지 않은 기능을 발견하곤 마치 신문명이라도 접한 사람들처럼 환호했는데, 그 순간이 내겐 여행의 모양으로 보였다.
여행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쇼핑이나 식도락,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와 부딪히기 등 저마다 바라는 바가 다를 것이다. 내게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나 쉬는 것에 가깝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에서 밤이 깊으면 적막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한 거리를 걷고, 알람을 맞추지 않은 채 잠들어도 괜찮은 며칠 같은. 그렇게 일상의 루틴과 다른 날들을 보내면서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주문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일. 예상치 못한 마주침에 호들갑을 떨어도 사랑스러울 수 있지 않던가. 특히 이번 여행은 모지코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많이 만난 덕분에 나는 그들의 잔잔한 일상에 조약돌을 던진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돌이켜 보니 모지코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이 나보다 한참은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나 너무 철없이 군 것은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의 첫날밤 들른 톤센(トンセン)이란 이름의 술집에는 동네 주민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저마다의 주말 밤을 보냈다. 톤센. 그러니까 동생을 뜻하는 이 단어의 발음은 우리와 매우 비슷하다. 술집의 이름처럼 그곳의 모두가 동생 같아 보였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쿠라에게 농담 삼아 네짱(姉ねえちゃん)! 하고 부르면 살갑게 웃어주던 얼굴이 선연하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을 추진한 하가람은 나보다 열네 살 어린 친구다. 띠동갑 넘게 나이 차가 나는 이와 친구가 될 줄이야! 문득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어 시무룩해지는 순간이 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나,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어른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상황에서는 어른인 척해야만 한다. 나는 좋은 어른일 수 있을까.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그와 동시에 아직 어른 아닐래, 소리치고 싶다. 눈이 오면 폴짝폴짝 뛰다가 눈사람을 만들고 작은 일에도 배꼽이 빠져라 웃고 싶다. 이번 여행은 이런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숨결을 불어넣어준 셈이다.
오후 느지막이 나서면 사쿠라의 집 앞 작은 화단엔 여치 한 마리가 있었다. 며칠 동안 조금씩 자리만 옮겼을 뿐 아주 떠나지 않는 채로. 하루 종일 여기 있었던 거야. 누가 했던 말일까. 마지막 날 짐을 챙겨 나오며 마타 아오우네(また あおうね) 하고, 또 만나자 조그맣게 속삭인 뒤 역을 향해 걸었다. 모지코역에서 코쿠라역으로, 기타큐슈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서울역으로, 우리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이치고이치에. 침대에 누워 발음해 보았다. 내가 만난 모든 인연에게 이 단어를 선물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일생에서 당신과의 모든 만남은 한 번뿐인 귀한 것이므로, 너라는 사람이 내게 스며와 나를 빚어준 덕에 지금의 내가 가능한 것이므로. 그러니 오늘 스친 인연들과 머물러준 인연들에게 고맙다고 말해본다. 아자스(アザ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