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
느지막이 일어나 부은 얼굴로 가장 먼저 한 일은, 채 정리하지 못하고 싱크대 위에 어질러둔 접시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깨지지 않도록 하나하나 싸둔 것들을 풀어내며 그릇들을 참 오래도 묵혀뒀다, 는 생각을 했다. 지난 사 개월 동안 밥을 해 먹은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치 계절을 타는 것처럼 헛헛한 마음이 들어서였을 뿐이다. 그래서 나를 소홀히 여기게 되는. 그런 마음.
냄비와 프라이팬, 몇 없는 그릇과 수저를 씻으며 아침 거리를 고민했다. 아직 새집에 냉장고가 오지 않아서 야채 같은 신선한 재료는 없고, 그나마 날계란 몇 알과 고추 참치캔, 김과 김자반 정도가 있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어 끼니를 해결하면 될 일이지만, 싱크대 앞에 서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는 것만으로도 이사의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생각한다.
밥을 데울 전자레인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쇼핑 앱을 열어 구매율이 높은 전자레인지와 장바구니에 미리 넣어두었던 두루마리 휴지를 주문했다.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제품을 골랐다. 당장 먹을 밥은 편의점에서 구매해 데워오기로 하고, 대충 겉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집에 새로 주문한 햇반 한 박스가 큼지막하게 있다는 것은 아무렴 괜찮았다.
데워 온 밥을 두고 씻어둔 그릇 중 계란 프라이를 함께 올릴 수 있는 사이즈의 그릇을 골랐다. 언젠가 수진이 선물해 주었던 식기였다. 수진을 닮아 정갈한 모양새를 한, 계란 프라이를 대충 올린 햇반과는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그릇이었다. 대충 물기를 털어내며, 키친타월도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릇에 햇반을 긁어 넣고 팬에 카놀라유를 둘러 프라이 두 개를 부쳤다. 팬에 떨어지자마자 노른자가 깨지는 게 영 뻑적지근했지만, 상온에 이틀 뒀다고 상했을 리 없다ㅡ는 근본 없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맛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득 궁금해져왔다. 그릇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은 뭘까.
언니. 그릇을 선물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야?
수진에게 물었지만 실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에 가까웠다. 오늘 언니가 선물해 줬던 그릇에 첫 끼 해먹었어, 오랜만에 해 먹은 밥이었어. 별거 아닌 식사였지만 ‘스스로 끼니를 챙겼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고맙다는 나의 말에 수진은, 집은 따뜻해? 이불을 사주고 싶은데 말이야… 하고 언제나처럼 나의 안녕을 바랐다.
날 추운데 밖에 오래 있지 말고 얼른 집 들어가. 수진이 늘 하는 말이었다. 밖에서 끼니를 대충 때웠다고 하면 건강을 걱정했고, 이따금씩 ‘집에 데려와서 밥 해먹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그릇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온기가 있는 밥을 챙겨 먹길 바라는 마음.
그 온기라는 것은,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라거나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마음.
다 먹은 그릇을 씻어내며 포만감을 충분히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
빈속을 든든하게 채워내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거.
그릇을 선물 받은 지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된 ‘그릇을 선물받은 사람의 마음’이 있다. 첫 독립. 잘 지내야지. 온기 있는 밥을 먹어야지. 건강한 재료로 몸을 채워야지. 저녁거리를 고민하는 동안 마음이 벌써 든든해져 오는 듯했다.
“언니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야.”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는 것은….
“궁금하군요,,,”
“팥양갱 레터에서 볼 수 있나요”
혼자서도 잘 살아낼 수 있다는 용기 같은 게 아닐까.
“오늘도 고생 많았어 언니. 저녁 든든하게 챙겨 먹어.”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저녁 거리를 고민해야지. 얼른 들어가서 따뜻한 밥을 먹어야지.
용기를 주는 사람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삶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또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