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 눈빛을 보려고
친구들의 티셔츠를 만들어 주는 것이 취미이던 저는 결국, 직물에 열과 압력을 가해 인쇄하는 기기인 ‘열프레스기’를 구매했습니다. 콘텐츠를 티셔츠에 옮기는 작업도 해보려고, ‘시를 지면이 아닌 100% 면으로 발표하다!’라는 슬로건의 ‘시-티 프로젝트’도 시작했지요.
warmgrayand.blue/city
제가 데드리프트로 80kg까지 드는데요. 그런 저도 감당이 안 될 만큼 무거운, 아마 100kg이 넘는 열프레스기가 작업실에 도착했습니다. 덩그러니 놓인 열프레스기를 보다가, 사람들과 함께 이걸 사용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을 모집했지요.
[ 나만의 티셔츠 만들실 분 구함 ]
모인 사람들은 자신만의 디자인을 이미 갖고 있기도, 저와 함께 디자인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어떤 분들은 아이패드로 그린 자신의 그림으로, 어떤 분들은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한 것을, 어떤 분들은 손으로 그린 그림을 옮겨 자신만의 디자인을 완성했지요. 입고 다니고 싶은 옷을 만들기도, 자신이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을 새겨 넣기도 했지요.
대망의 프린팅 날! 1기에서 다섯 분, 2기에서 다섯 분이 자신의 티셔츠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자신을 닮은 제각각인 티셔츠를 찍어내며, 연신 “오오-” 소리내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각자가 찍어 내는 티셔츠들을 바라보는 그 눈빛 하나를 결국 보려고 이런 활동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스스로 ‘완성’했을 때 나오는 사람들의 특유의 눈빛과 표정을 보려고 많은 일들을 꾸밉니다.
책을 만드는 일도 같습니다. 물론 잘 팔리는 것이 제게 가장 좋은 일이겠으나, 그에 앞서, 그 책을 받아본 글쓴이,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하는 눈빛을 보는 게 제가 책을 만드는 이유라면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10주 과정의 글쓰기를 함께 하고, 자신의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20-30대가 모인 곳도 있었고, 50-70대가 모인 곳도 있었는데요. 저는 처음 수강생 분들이 마음을 열어 쓴 글을 본 날에도 울컥했으나, 그들이 자신의 책을 ‘낳은 것 같다’라고 말할 때에는 더욱 울컥했어요. 그리고 서로의 책을 모아 연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꽤 힘들었지만 10주 간 무언가 함께 한 보람을 느꼈지요.
- 어렸을 때에는 만들기를 좋아했습니다. 무엇이든 가져다 모양과 기능을 가진 무언가로 만들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무언가를 사람들 앞에 내어 놓는 걸 좋아했던 저는, 이과에서 문과로 문과에서 공대로 공대에서 디자인과로(...) 옮겨 다닌 끝에 결국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그때에도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특히 모형이라 불리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일을 가장 좋아했지요. 우리가 상상한 것을 실물 그대로 재현해 만들어내는 것을 말예요. 그때에도 어릴 적 만들기를 좋아했던 마음으로 자랑스레 사람들 앞에 그것을 내어 놓곤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게 우울증이 찾아온 것은 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사랑해온 ‘만들기’가, 그러니까 디자인을 제가 못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였지요. 졸업 후에 책을 ‘만들기’ 하면서 저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 놓고, 사람들이 그것을 봐주는 걸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 다만 요즘 들어 더 사랑하게 된 것은 내가 만든 것을 사람들 앞에 ‘짠-’ 하고 내어 놓는 일이 아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그들이 내게 ‘짠-’ 하고 내어 놓는 모습을 보는 일입니다.
나만의 티셔츠 만들기 프린팅 2기를 진행하던 중, 유독 아이들이 작업실 앞을 많이 지나갔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이 워크숍을 진행하면 더 멋진 눈빛을 볼 수 있겠는 걸?’ 하는 조금 이기적인, 그러니까 그들의 도파민 분비를 통한 내 도파민 분비를 위해 이런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삐뚤빼뚤 내 그림으로 나만의 티셔츠 만들기 ]
첫 손님으로 친구들의 아이들과 그 친구가 왔습니다. 아이들은 제 눈치를 보며 말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두 시간의 그림 그리기 시간이 끝나갈 수록 아이들은 내게 장난을 치고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2주 뒤의 프린팅 시간이 기대됐습니다.
‘얼마나 멋진 눈빛으로 자신의 티셔츠를 바라볼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사람들과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만들기’를 계속 지속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