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결 김규열의 산문
떠나는 사람 남겨진 사람
얼마 전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성인이 되고 처음 봤으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이 앞자리가 바뀐 만큼 우리는 참 많이 바뀌었다. 공부보다 축구를 좋아하던 친구는 행원으로 번듯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피부는 새카맣게 탔지만, 이제는 땀에 절은 체육복이 아닌 새하얀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맬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니 근사했다. 그러다 평소에 궁금하지도 않던 다른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누군가는 안정적인 생활을, 누군가는 여전히 방황하겠지. 이런 기준은 또 누가 정하는 것일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만일 만나게 된다면 그저 그들의 삶이 어떨지 궁금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하루의 절반에 달하는 시간을 같이 보낸, 어쩌면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마음과 생각을 가졌을 시절. 아마도 이제는 같은 행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같은 부분이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반가운 마음과 달리 오랜만에 만난 사이가 나눌 수 있는 대화는 그다지 깊거나 길지 않았다. 형식적인 근황을 나누고 칭찬에 가까운 말들을 짧은 시간 동안 우수수 쏟아내다가 친구의 눈동자를 보고 문득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몇 해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는 허물없이 가까운 사이였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마음이 부닥쳐 멀어진 친구여서 몇 년간은 소식도 모르고 살았다. 돌이켜 보면 정말 별 거 아닌 이유로 멀어진 게 우습기도 했고, 지극히 나의 입장에서 억울했으며, 이렇게 쉽게 멀어질 사이였다면 어떻게든 헤어질 사이였을지도 모른다는 운명을 빙자한 체념을 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가 보낸 치기어린 학창시절. 군입대를 앞두고 함께 세부로 떠난 일. 그건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과 떠난 여행이었으며, 통영이나 부산, 포항 같은 파도가 쉬이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도시로 떠난 날들. 그런 소중한 날들은 부식되지 않고 생생히 기억됐다.
사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꺼낼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친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대답과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 삼가하자는 뉘앙스를 내보였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구야. 나는 이렇게 믿는다.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떠난 사람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기. 떠난 사람을 기억하기. 잃었지만 잊진 않기.
이제는 모두에게 친했던 친구가 되어버렸으므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또는 먼 미래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나와 그 친구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밀린 이야기와 쌓인 오해를 풀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과거로 돌아간다. 내가 믿는 남은 사람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짧은 삶 속에서 두 번의 장례를 치뤘다. 두 번 다 나의 친구였고 동일한 사인(死因)이었다. 가끔은 누군가 또 나를 떠나진 않을까 불안하다. 떠나더라도 멀리 가지 않고 닿을 수 있는 거리만큼만 떠나면 좋겠다. 떠난 사람에 관해 생각하면 늘 후회가 차오른다. 그런데 후회는 떠난 사람이 나에게 남겨둔 사랑 같다. 더 큰 후회를 하지 않길 바라는 마지막 가르침 같다. 그 후회의 손을 꼭 쥐고 내 옆에 있는 당신을 바라본다. 남은 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쥔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본다. 차라리 당신보다 내가 먼저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