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메이커 영화에세이
실수처럼 저질러진 꿈들에게
- 영화 ‘라라랜드’
꿈을 가졌다는 게 무기가 되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가버렸고, 이따금 그 꿈이라는 것이 아킬레스건이 되어 나를 배반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내어줄 마음이 없어요.
세상은 우리에게 다 헤져버린 꿈은 잊고 따듯한 식사와 근사한 옷으로, 삶을 가꾸어 나가라고 하지만 어쩌겠어요. 식은 밥과 마른 반찬으로 끼니를 때워도 몇 줄의 문장이면 며칠은 꺼지지 않는 포만감으로 기뻐하는 나에게는 이것만이 살아있는 삶인 것을요. 당장은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어도 가끔은 기가 죽어도, 내게는 매일 더 선명해져가는 꿈이 있는걸요.
언젠가 함께 시인이 되기로 약속했던 친구는 성실한 직장인이 되었고, 대신 꿈을 꿔줘서 고맙다던 이들은 이제 더는 나의 문장을 읽지 못할 만큼 바빠졌어요. 정말 그들의 꿈은 한여름의 열기처럼 일순간 뜨겁게 타올랐다가 서서히 사라져버린 걸까요. 모두가 인생의 새 계절, 새로운 챕터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홀로 뜨거운 뙤약볕을 맞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괴로울 때 미아를 만났어요.
긴장과 기대를 안고 오디션 장을 향하는 미아, 수백 번 연습한 대사들을 다 뱉지도 못하고 쫓겨나듯 밖을 나오는 미아, 그리고 그녀와 같은 배역을 따내기 위해 복도에서 호명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미아들. 그녀들을 보며 느꼈던 동질감은 비애로 번지기도 했어요. 꿈을 향한 절박함과 그에 비례하는 잦은 실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끌고 나아가는 굳은 마음. 그 모두를 잘 알기에 그녀가 웃을 때 울고 싶어졌죠.
재능은 없고 하려고 하는 열정만 가득한 사람들 있잖아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나봐
/ 영화 속 미아의 말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라면 불성실한 카페 직원이 되는 것쯤 두려워하지 않았던 미아에게서 이러한 고백이 흘러나왔을 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어요. 꿈을 향해 자신을 태워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거예요. 나의 열심히 열심에서 그쳐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마음. 매일 뜨거운 가슴으로 아침을 여는 내가 밤이 되면 차가워진 머리로 되뇌는 생각과 같았죠.
‘생각보다 나는 비범하지 않을지도 몰라.’
‘어쩌면 이 길보다 더 맞는 길이 있었는지도 몰라.’
‘너무 오래 고집을 부렸는지 몰라.’
‘J의 말처럼 이제는 정말 끝을 보아야 할 때가 온 거야.’
처음 품었던 때처럼 더는 환영받지 못하는 나의 꿈이 가여워 엉엉 울던 밤들이 있었어요. 다 큰 어른의 밤이 젖은 휴지로 산을 쌓으며 하얗게 샐 거라고는 조금도 몰랐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사람들의 말처럼 여전히 꿈을 꾸는 일은 실수일까,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엎질러진 시간들을 수습하며 살아가는 일일까...... 고민과 가정이 깊어질수록 이상하리만큼 더 많은 문장들이 나를 찾아왔어요. 더 많은 책을 꿈꾸게 되었고 더 긴 시간을 (허비라고 생각한대도) 쏟고 싶었어요, 나의 애잔한 꿈에게. 주름지고 때가 탄, 그럼에도 여전히 반짝거리는 작고 소중한 나의 꿈은 어쩌면 비극 속에서 더 찬란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모가 파리에 살았었어요. 기억나요,
그녀는 집에 오면 이야기를 해주곤 했어요.
외국에서 사셨던 이야기를 그리고
그녀가 강에 뛰어들었던 이야기를 해줬어요. 맨발로…
그녀는 미소 지으셨죠.
뛰었어요, 돌아보지도 않고.
센강에 뛰어들었어요.
물은 얼어있었고 그녀는 기침을 한달 간 해야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또 하겠다고 말하셨어요.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비록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상처받은 마음들을 위하여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를 위하여
그녀는 내게 말했죠
약간의 광기는 열쇠란다
새로운 색깔을 볼 수 있게 하는,
그게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는 모르지만
그게 우리가 필요한 이유란다
그러니 반란군을 불러와
조약돌 사이에 치는 물결들을,
화가, 시인, 광대들까지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비록 미쳐 보이는 그들이지만
부서져버린 마음들을 위하여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를 위하여
난 그때 기억을 되감아봐요.
그녀, 내리는 눈, 센강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또다시 뛰어들 거라 말했죠.
미아에게 배우를 꿈꾸게 했던 이모, 그녀는 얼어붙은 센강에 뛰어 긴 몸살을 앓았지만 그럼에도 또다시 뛰어들겠다고 했대요. 미소를 지으면서요. 한겨울에 언 강에 뛰어드는 모습은 마치 미친 사람의 실수처럼 보일 거예요. 그 탓에 핀잔을 받기도 할 테죠.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요. 긴 몸살을 앓으면서도 다시 뛰어들고 싶을 만큼 후회가 없다면요. 도리어 뛰어들지 못했더라면 몸살보다 긴 후회에 몸부림쳐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약간의 광기는 열쇠’라며 그것이 우리가 필요한 이유라던 이모의 말을 붙잡으며 미아는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바보 중의 바보인 자신을 위하여 마침내 실수처럼 저지러진 꿈을 이뤄나가요.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클리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계산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이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물이 아닐까요.
어리석어보일지라도, 미쳐 보일지라도, 마음이 부서질지라도, 이 작은 삶을 어디로 데려다줄지 모르는 꿈을 움켜쥘 때 우리의 실수는 꿈으로 가는 가장 완벽한 경로가 되어 줄 것이라는 것을, 오늘도 저는 믿어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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