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양갱 아로 작업일지
안 하는 것도 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요즘은 뭐 하고 지내세요?”
뭐 하며 지내냐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냅니다.
오늘은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서 코인 세탁방엘 갔습니다. 밤새 표백제와 세제를 풀어 담가두었던 흰 티셔츠를 잘 헹궈서 수건과 함께 세탁기에 몰아넣었습니다. 세탁기가 일을 하는 30분 동안 집으로 돌아가서 곧 있을 합평 모임에 제출할 글을 다듬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문장 하나하나가 전부 억지스럽다거나 어색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에 팥양갱 회의를 했습니다. ‘주제’를 제외한 모든 출판사에는 26년도에 출간 예정인 도서가 있는 듯했습니다. “주제에서는 특별히 출간이 예정된 건 없고요, 제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다들 눈을 빛 내우며 제 말을 경청해 주셨습니다.
하루를 얼마나 바쁘게 보냈든, 치열하게 고민을 하든, 누구에게도 차마 보일 수 없는 글을 썼든. 독자분들께 내어 보일 수 있는 거시적인 것이 없다고 느낄 때면 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창작물이라는 게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들이고 뜸을 들인 만큼 더욱 근사한 완성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자랑스럽게 내어 보일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팥양갱을 함께 이루고 있는 각 대표님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출판사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어떤 책을 만들지 구상하고, 기획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그냥 ‘내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는 등단을 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고, 그늘에 가려진 사회의 면면들을, 그에 속한 사람들을 조명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아무것도 안 하며 지내는 시간’이 꽤 길어질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 동안에는 열심히 글을 쓸 테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테고, 전시를 보러 가거나 여행을 다녀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철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걸 보니 아직 창작자로서의 수명은 쓸모 있는 만큼 남아있나 봅니다. 미래의 저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독자분들께 어떻게 읽힐지. 부푼 기대 덕인지, 당장 눈앞에 놓인 계획이 없어도 저는 무섭지 않습니다. 안 하고 있는 와중에도 저는 무언가를 위해 꾸준히 발을 내딛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팥양갱 레터를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이 말이 필요한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안 하고 있는 것도 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봅니다. (저의 오랜 희망 사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