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양갱 산문
깊게 스며든
오종길
한동안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오랜만에 사무실을 찾았다. 급할 것 없으니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사무실에 앉아 한나절을 보냈다. 업무 중간중간 큰 창 앞에 서서 바깥의 삼각지교차로를 지나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내다보다가 가로수 이파리가 짙게 물든 것을 알아챈다. 한 그루 나무에도 색색이 다른 빛깔의 나뭇잎이 매달려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갸름한 가을볕을 밟고 선 이가 있고, 빌딩 그림자 아래인 사람도 있다. 가로로 세로로, 위아래로, 쉼 없이 교차가 벌어진다.
가을이다. 떨어지기 직전의 잎새를 오래 살피기 좋고, 굴러가는 낙엽에 지난 시간을 곱씹으며 산책하기도 맞춤한 계절이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오후에 도토리를 줍다가 까르르 웃던 날이 있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가을의 기쁨을 맛보았던가. 참나무 가로수길을 오래 걸었던, 이르게 찬 바람이 불던 어느 늦은 밤, 친구와 마주 앉았다. 고향도, 다니던 학교도 달랐던 우리는 어떤 우연으로 망해가는 독서실의 나란한 자리에 앉게 되었던 것일까. 무슨 계기로 칸막이 너머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서른이 넘어 다시 만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걸까. 분명 근심 가득한 날들이었는데, 너와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웃고 또 웃는다. 이상하지만 명백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허물없는 시간을 보낸다.
내 학창 시절의 밝음과 어둠을 목격한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서른의 얼굴로 앉아 있다.
가끔 오랜 친구들을 만난다. 고향에 들러 한때 우리들이 배회하던 거리를 함께 걷거나 이제는 전혀 달라진 삶을 꾸리고 있는 장면을 보기도 한다. 아이의 부모가 되고, 가게의 사장이 된 친구들. 세월의 흔적이 선명해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뭐라 말하는 게 좋을지 고심하다 쓴웃음이 새어 나와버린다. 잠깐의 정적 뒤로 농담을 꺼내놓기 바쁘다. 마치 무언가를 감추려는 이들처럼 그러고 만다. 잔을 부딪쳐 술을 털어 넣는다. 그래 술맛이 쓴 탓이겠지. 생각해버리기로 한다.
시월에 진행한 북토크에서 받은 질문에는 ‘요즘 내 삶의 키워드’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있었다. 고심하다 마이크를 잡고 단어 하나를 돌려주었다. 균형. 저는 요즘 균형에 대해서 자주 생각해요.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한동안 내 삶에서 중요한 단어였다. 물론 여전히 그러하다. 자꾸만 한쪽으로 치우치기 십상이기 때문인데, 양팔 벌리고 좁다란 평행봉을 걸어가는 장면을 그려본다. 살아가는 일이란 아슬아슬한 순간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것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내게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디디면 저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처음엔 분명 조금 흔들리는 정도였는데 눈 깜짝할 새 온 세상이 요동친다. 잔뜩 일그러진 마음으로 지내온 시기가 떠오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사람처럼 멍한 심정인 적도, 아무렇지 않게 펼쳐진 맑은 하늘을 보다가 실소를 하였던 경험도 있다. 짧은 가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도 균형에 대해 생각한다. 과거의 일이 불현듯 떠오르다가도 내일을 향한 걱정이 덮쳐오기도 하는 이상한 날들. 이 가을, 그리고 다가올 겨울에 내게 주어진 일이란 어쩌면 부지런히 사무실에 나와 자리를 지키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 별것 아닌 행동이 내 생활의 균형을 위한 한 걸음이 되어 나를 또 어딘가로 데려다줄 테니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조용히, 부지런히. 스미고 물들어 짙어질 때까지. 깊숙한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